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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대북정책

남한의 대북정책

 

이승만 정부는 대북정책(통일·평화)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승만은 입만 열면 북진통일을 외쳤지만 남북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조봉암을 사형시키고,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이승만은 휴전 협상도 거부했는데, 한국 정부는 전쟁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휴전 협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은 이승만을 비밀리에 제거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북한과는 사사건건 대립했지만 정작 이승만은 국회 동의도 없이 전작권을 맥아더에게 넘겨 버렸다. 일국의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다른 나라의 일개 장군에게 전작권을 가져다 바친 사례는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분단과 전쟁 이후 공식적인 남북접촉은 1971820일 남북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판문점에서 만난 것이다. 1972829일부터 92일까지 제 1차 남북 적십자 본 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같은 시기 극비로 이후락 중정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뒤이어 박성철 부수상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이 과정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원칙을 발표했다. 7·4 남북 공동성명이다. 하지만 남은 유신체제, 북은 수령체제로 귀결되자 남북 접촉은 단절되었다. 1980년대 들어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1984년 북한은 남한에 수해물자 지원을 했으며, 1985년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단의 상호 방문으로 이어졌다.

 

노태우 정부는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외교다운 외교를 수행했다. 북핵도 남북문제이므로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노태우 정부의 통일·외교 정책은 1988년 발표한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른바 ‘7·7선언에 담겨 있다. 이 선언으로 인해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 화해, 남북 불가침, 남북 교류 협력 등 남과 북이 함께 가야 할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와 달리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대책의 대책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점이다. 남북 대화를 정권 차원에서 활용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김영삼이었다.

 

분단 이후 대북정책을 평화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 대통령은 김대중이다. 그의 후임인 노무현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10년간 남북관계가 유례없이 진전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민간단체를 통한 교류협력을 장려하는 先民後官’, 민간기업의 대북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도움을 주는 先經後政’,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先易後得쉬운 일을 먼저 하고 어려운 일은 나중에 한다는 先易後難등의 원칙을 세우고 대북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 성과는 2년 뒤 남북 정상 회담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남북통일을 위한 설계도라면,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 공동선언은 구체적인 실행계획서였다. 따라서 7·4 남북 공동성명,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 공동선언은 언젠가는 남북통일의 기본 헌장(憲章)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특히 10·4 남북 공동선언은 북방한계선(NLL)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계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격으로 인한 관광 중단을 시작으로 이산가족 상봉 중단, 남북 대화 실종으로 악화되었다. 그리고 2010년 천안함 침몰 곧이어 연평도 포격 등을 거치면서 남북은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학술·문화·종교 분야의 교류나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완전히 끊어졌다. 이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룩한 10년의 성과는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편 천안함 사건은 미묘(微妙)하다. 한국의 발표에 의하면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해군이 미국의 방어망을 뚫고 기습 공격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으로서는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을 남한에서 선전해 주는 모양새라 굳이 나서서 우리가 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이유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리고 한국을 제외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은 모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떤 논평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도 굳이 이에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2014년 박근혜는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시용했다. 이 말은 박근혜 정부를 상징한다. 통일 대박이라는 말은 최순실 작품이다. 최순실은 통일이 되면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르는 계획과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으로서 통일 대박이란 결국 자신을 잡아먹는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북한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무대책을 그대로 계승했다. 박근혜의 북한 체제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은 실현 가능성도 낮고, 그것이 어떻게 대박이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통일이라면 경제는 둘째치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것이다. 만약 수백만 북한주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온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북관계는 퇴보에 퇴보를 거듭했다. 두 정부의 대북정책은 바둑이라면 정석이 아니라 줄바둑이다. 포석도 없고 판세를 읽는 눈도 없는 동티였다. 여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직접 협상을 담당하고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정권이 바뀌자 짐을 싸야 했다. 외교정책은 전체적인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데 바른 말을 한다고 직()에서 물러난다면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강해지겠는가. 북의 핵문제가 해결되겠는가. 하다못해 군사 도발을 제대로 대응하기나 했나. 한심한 정권이었다. 독일은 동방정책을 20년 동안 시행한 뒤 통일이 되었다. 동방정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사회민주당 정부였지만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동방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통일을 완수했다.

 

남북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 외교는 국제 무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국제 정치에 연동시켰고, 그 덕분에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교 역량까지 훼손시켰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연장선에서 있는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김영삼 정부가 자초한 혼란과 무능력만 이어받았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의 길은 남북 화해와 협력, 미래를 향한 길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의 길은 전쟁의 공포와 갈등, 과거로 퇴행하는 길이었다. 한편 작전권 환수를 처음 정책 의제로 삼은 사람은 박정희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작전권 환수에 관심이 없다. 작전권 없는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 작전권 없는 군대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빨리 작전권을 환수해야 한다.

 

트럼프와 군산복합체

 

트럼프는 장사꾼이다. 트펌프는 안보를 상품화하고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또한 그는 군산복합체부터 압박을 당한다. 트럼프는 백인 우월주의자다. 네 번째로는 그는 기독교인이다. 이는 그가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의식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인이 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많다. 그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국민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매우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의 군부와 군수업체, 의회와 상호의존적 결탁 체제다. 이는 이익 공동체인 동시에 담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군산복합체를 모르면 결코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대북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좌지우지한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온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싹이 튼 군산복합체는 냉전과 한국전쟁을 지나며 미국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남북의 공통점과 차이점

 

남북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남한이 형이하학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북한은 형이상학적 가치를 중시한다.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 남한이 오히려 유물론자 성향이 강하다. 첫째, 남한에서는 부자되세요라며 경제성장과 외 보유고를 강조하지만, 북한은 자주성과 주체 등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 둘째, 남한은 개인주의, 북한은 집단주의가 강하다. 셋째, 남한은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고, 븍한은 민족주의를 지향한다. 넷째, 남한은 미래가 없는 현실을 현실 취급을 하지 않는다. 반면 북한은 과거부터 보고 현재를 보는 과거지향적인 시각이 강하다. 다섯째, 북한의 수령주의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질적 특성이다. 수령이란 말도 영어로 번역하기 힘들다. ‘Great Leader'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수령이란 말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이다.

 

남북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 깊고 넓고 풍부한 경험이 있다. 우리 민족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 분단, 빈곤과 산업화, 민주화, 독재와 민주 정부를 모두 경험했다. 또한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유산도 가지고 있다. 어떤 민족이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곧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는 의미다. 둘째, 언어와 인종이 같고, 유교적 가치관과 샤머니즘적 신명도 유사하다. 셋째, ‘을 품고, ‘이 많고, ‘이 있다. 넷째, 고유한 절대 가치가 있다. 예컨대 사람(人間)이 되어야지라는 말은 남과 북에서 동일하게 쓰인다. 다섯째, 긍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북한은 미국에 맞서 싸운다는 것에서 자긍심을 찾고, 남한은 한류에서 긍지를 느낀다.

 

긍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통일의 과정이다. 남북이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경험에서 긍지를 느껴야 한다. 통일을 일구는 것에서 역사적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다. 아울러 통일을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이해하고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익환 목사는 생전에 통일을 하려면 북한과 친해야 한다. 이남 사람들은 친북이 되고, 이북 사람은 친남이 되어야 통일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박한식/강국진 선을 넘어 생각한다부키, 2018

*2018.8.31

by 우듬지 | 2018/10/19 21:54 | 雜文 | 트랙백

모파상 『피에르와 장』 서문

 

모파상 피에르와 장서문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면 어느 것이건 충분히 오랫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살핌으로써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어떤 모습을 거기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어느 것에나 아직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응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미 생각했던 바의 추억에 의지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사용하는 데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 앞에서 떠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독창적이 된다. 더 나아가서, 온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알의 모래나, 두 마리 파리나, 두 개의 손이나, 두 개의 코가 없다는 진실을 말하고 나서, 그는 나에게, 어떤 인물이나 어떤 사물을 단 몇 줄의 문장으로 뚜렷이 개별화하고, 같은 종족의 다른 모든 인물이나 같은 종류의 다른 모든 사물과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하라고 촉구했다. “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서문은 문학의 사실주의를 설명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글이다. 플로베르가 모파상에게 가르치는 것은 작가가 그 자신의 시각에 질적 변화가 올 때까지 사물을 지켜보는 방법론이다. 이 글은 문학의 자율성 개념이 성립되던 시기에 그 원칙을 천명(闡明)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기서 모파상이 자기 스승 플로베르를 대신하여 전하는 바의, 대상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마침내 발견되는 한 마디, 새로운 말은 이제까지 그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말에 다시 첨가되는 또 하나의 말이 아니라 기존의 말들과 그 관념을 지워버리고 그 대상에 대해 늘 지녀왔던 인식을 전적으로 전복하는 말이 된다. 결코 바뀔 수 없던 것이 문득 다른 얼굴 다른 성질을 지닌다. 낯익은 것은 낯선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지겹도록 무거웠던 것이 한순간 가벼워진다. 한 불꽃이 다른 불꽃과 닮지 않고, 한 나무가 다른 나무와 더이상 닮지 않을 때, 그 불꽃과 나무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불꽃과 나무들의 타자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하나의 가 되어 제 언어를 얻어낸다. 불꽃과 나무와 그것들을 보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인습의 마법에서 동시에 풀려난다. (……) 낱말들을 지배하여 빈약한 내용과 죽은 지식들을 실어나르게 하는 낡은 연상을 청산하여, 그 낱말들을 낡은 의미 가치에서 풀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때 현실은 파괴되거나 사라지지 않더라도 감추어져 있던 그 비밀스러운 구석들이 햇빛 속에 얼굴을 들어 다른 현실의 발명에 참가한다. 현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확대된다. 그 점에서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자의 믿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pp.244-247

 

말라르메는 운문의 위기라는 평문에서 인간의 언어가 종합적 언어가 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복수이며, 최상의 언어가 없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언어들. 생각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도구들도 속삭거림도 없이 쓴다는 것이기에, 그러나 불후의 언어가 아직도 침묵하고 있기에, 지상에서 관용(慣用)의 다양함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단 한 번의 발음에 의해 물질적으로 진리 그 자체로 될 낱말들을 아무도 말할 수 없도록 지지한다. 이러한 금지는 자연(인간은 거기에 한 자락 미소로 맞부딪친다) 속에 엄혹하게 군림하기에, 스스로 신으로 여길 만큼 가치가 있는 이성은 없다.” p.288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발췌

 

간절하게 바라보는 현실은 현실보다 조금 덜 현실이다. /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삶을 선취하여 이 세상에서 벌써 행복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그 미래의 삶에 대한 확신과 미래 세계의 건설 동력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진보주의자 그의 존재는 이 불행한 세성에 점처럼 찍혀 있는 행복의 해방구와 같다. / 한 사람의 삶은 우주 전체의 삶이며,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짧아도 영원에 이르는 시간이다. /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만이, 마음속의 처절한 상처를 염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만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다. 그래서 시와 소설의 진실도 아름다움도 인간의 처절함과 염소의 무심함 사이에서 결정된다. / 병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있어도, 불안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없다. 끈질기게 찾아오는 불안과 마주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불안이 축복일 수도 없다. 불안의 저 검은 얼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를 갉는 그 줄칼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가 축복이라면 아마도 축복일 것이다. / 삶은 시에 덮여 물처럼 액화(液化)하고 물처럼 기화하지만, 그 물을 흔들고 시 밖으로 다시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 자기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의 삶은 처절했고 미래의 삶은 와야 할 길도, 가야할 길도 끊겼기 때문이다. / 눈물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 눈물을 가득 담고 자전하고 있는 이 지구가 파열할 위험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픔은 잘 관리돼야 한다.


신비로운 것은 어디나 있다. 그러나 여린 것들만 신비로운 것을 알아본다. 시인들은 신보다 대자연에 더 의지하며 자연은 하나의 신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리상의 모든 발견이 사실상 끝나자 저 자연이라는 신전은 귀신 없는 사당과 같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물질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 없으니 정신의 비밀도 없고 비밀스러운 정신도 없다. / 우리는 이 깊이 없는 일상의 사막을 죽을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황무지에서도 황무지 밖을 꿈꿀 수는 있다. 일상의 권태 속에도 예외적인 시간이 있다.


부모가 쏟은 정성이 항상 자식의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칭찬도 독이 되고 꾸중도 독이 된다. 저 자신을 망친 사람은 많다. 게을러서, 의지가 부족해서, 사회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서, 핑계될 수 있는 말은 많다. 그리고 변명과 핑계들은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게으름을 말할 때 제 최선의 의지를 끌어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를 바꾸지는 못했다. 저 자신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저 자신도 바꾸지 못한다. 저 혼자만의 터전이 마음속 깊은 곳일수록 그렇다. /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 운명은 우리의 육체와 같고 우리가 딛고 선 땅과 같다. 나 자신이면서 늘 내 의지에서 벗어나는 육체는 제가 요구할 것을 요구하고, 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죽음 뒤에까지도 우리를 저 자신에게서 얽어 묶는다. 하지만 신화 속 오이디푸스처럼 운명에 패배하면서 운명 위에 인간의 위엄을 세운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 자연은 돈으로 매수할 수 없고 권력으로 호령할 수 없다. 자연 속에 이 안온한 삶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는 자에게 돈과 권력은 자연을 파괴하는 데만 소용될 뿐이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 황현산 사소한 부탁난다. 2018

* 2018.8.25

 

by 우듬지 | 2018/10/07 01:22 | 雜文 | 트랙백

펑화도 통일도 과정이다

펑화도 통일도 과정이다

 

사실상의 평화

 

1953727일 맺은 정정은 종전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단지 일시적인 전쟁의 중단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4년이 지났는데도 정전관리 체제는 무너지고 평화체제도 정착되지 못했다. 북한은 19913월부터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령부 대표로 군사정전위원회에 참석하자 정전관리체제 자체를 거부했다. 중립국감독위원회 역시 1993년 체코 대표단과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이 철수했다. 따라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화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평화체제를 위한 남북, 다자간 회담은 장기 교착상태이며, 남북한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도 중단되었다.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도 장기표류하고 공포의 균형만이 존재한다. 이미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상호확증파괴(MAD)가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된 미래. 하지만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법적인 평화개념에 치중했다. 일반적으로 평화협정은 전쟁 종결, 전후처리 문제, 평화 회복, 평화 관리 방안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성격이다. 그리고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법적/제도적 기초이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정의 일부다. 평화협정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고, 단계적 특성도 지닌다. 하지만 평화협정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평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동의 경우 평화협정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법적인 평화보다 사실상의 평화가 중요하다. 사실상의 평화란 법적/제도적 합의의 이행 과정을 포괄하며, 상호 관계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역동적 상호 보완관계다.

 

평화는 천천히 오게 마련이고, 평화체제는 하나의 과정이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의 특정 국면에서 이루어진다. 평화협정 체결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실상의 평화가 이루어진 뒤에 협정을 맺을 수도 있고, 법적 합의 후 평화로 진전시키는 방안도 있다. 중동 평화협정도 이런 사례 중 하나다. 남북한도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너무 멀다면 법적 효과보다 사실상의 효과가 중요하다. 미국과 북한 간의 종전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라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지만, 선언 이후 실제로 종전관리체제가 가동되면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를 관리해야 하기에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평화체제 관리감독은 남북평화관리 공동위원회를 남과 북이 대표로 구성하고, 한반도 분쟁해결 및 평화관리에 관한 일차적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화협정의 이행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별도로 본 협정의 부속의정서를 체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다자간 안보협력의 출발이었던 헬싱키 프로세스추진 과정에서 핀란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한국도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마땅하다.

 

통일은 과정이다

 

통일정책은 남북관계의 성격에 따라 달라졌다. 19727·4남북공동성명까지 대결의 시대’. 1972년부터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대화와 대결 제도적 합의의 시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 2007까지 접촉의 시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제재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대결의 시대는 제안경쟁의 시기였다. 남북한이 주장한 통일방안은 냉전시기에도 지속되었지만 상대가 받을 수 없는 제안만 했고, 오로지 국내정치용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부터 지금까지 통일방안은 기본적으로 결과로서의 통일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통일정책이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은 패러다임의 전환기로 평가받는다. 6.15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로소 감정의 대결이 아닌 이성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공존은 서로 인정하고 공존의 변화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1991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뒤이어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특수 관계임을 규정하고 공존과 통일의 관계를 개념화했다.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구체화한 것은 김대중 정부다. 이른바 포옹정책은 대북정책인 동시에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정책이다. ‘사실상의 통일은 자연스러운 확산 효과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존정책은 변화라는 역동성에 주목해야 하며, 경제협력과 평화정착은 보완관계다. 공존이 가져올 관계의 성격 변화는 상호 신뢰와 평화정착에 영향을 끼친다.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법적/제도적 형태는 제시할 필요가 없지만, ‘남북연합과 같은 중간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는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서로 인정했다. 이것은 통일에 대한 점진적/단계적 접근을 의미하며 동시에 과도적 과정혹은 중간 단계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합의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남북관계의 기본 성격이 냉전체제에서 탈냉전체제로 전환될 때 사실상의 통일상태가 실현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법적/제도적 통일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공간의 상상력과 북방경제

 

평화는 땅이고 꽃은 경제다. 제재와 억지보다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되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경제협력이 병행해 추진되어야 한다. 연계론이 아니라 병행론이다. 병행은 분리해 선순환하는 것이고, 순서에도 융통성이 필요하다.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해 병행 발전해야 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도 분리해 병행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저성장이라는 늪에 빠졌고,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성장동력 확충이다. 과거 해양경제권과 협력을 통해 산업화를 이뤘다면, 이제 북방(北方)경제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북방경제는 한국경제의 신동력을 위해 필수불가결이다. 조선산업을 비롯한 한국 경제의 성장주력 산업이 가파르게 하강하고 있다. 산업의 쇠퇴만이 아니라 인구절벽이 문제다. 우리 경제는 불평등과 양극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출구전략으로 하나는 새로운 혁신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동력의 확충이다. 성장동력이 확충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북방경제다. 북방경제로 산업 구조가 전환할 시간을 벌고 전환비용도 마련할 수 있다. 북방경제의 구상은 노태우 정부다. 그런데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남북이 서로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륙철도 연결은 남북 종단 철도가 연결되어야 한다. 북방 경제협력은 남··중 혹은 남··러 삼각협력을 의미한다.

 

북방경제는 한반도의 경제적 공간을 확장시킨다. 서울과 인천의 수도권 경제권은 북한의 노동력과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극동지역을 잇는 분업체제를 추진할 수 있다. 이러한 광역경제권은 동해안과 서해안지역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며, 동해안 지역은 농업으로 경제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인천에서 목포에 이르는 서해안지역은 한중 협력을 새로운 지역발전 전략으로 제시될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해안산업도시, 중국 연안지역과 삼각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위기의 땅에도 꽃은 핀다. 유럽통합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ECSC는 석탄과 철강을 국제적으로 공동 관리함으로써 전쟁의 뿌리를 제거해보자는 뜻으로 뭉쳐 평화의 물질적 기초를 마련했다. ECSC40년 뒤 유럽통합의 기원(紀元)이 된다.

한반도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 아주 오래된 북방경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땅이 없으면 꽃이 피지 않듯이, 평화가 없으면 북방경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능동적 접근으로 먼저 움직이자. 포괄적 접근으로 넓게 보자, 역사적 접근으로 길게 보자. 바위에서 샘물이 흐르고 모래땅에서 꽃이 피게.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pp.278-309

 

**70년의 대화 발췌

 

(클린턴 정부 시기 전직 대통령 카터의 방북) 미국의 강경파는 분노했고, 온건파는 안도했으며 의심 많은 사람은 냉소했고, 지혜로운 사람은 득실을 계산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의 결론은 카터-김일성 회담 결과를 협상의 국면으로 돌리는 명분으로 삼기로 했다. p.182

 

독일 통일의 설계자 에곤 바르(Egon Bahr)는 통일을 어떤 역사적인 결정을 통해 실현되는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많은 작은 걸음과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작은 발걸음으로 접근하는 정책이자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이러한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구소련과 폴란드 등 2차 세계대전 피해국과 관계를 복원하고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간 진영 대결을 진영 공존으로 이끄는 시도도 병행함으로써 유럽의 평화를 구하는 동시에 그 질서 속의 독일 존립과 성장을 추구했다. 김대중 정부도 분단의 현실을 인정해야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에곤 바르가 현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이 현상부터 출발해야 하며, 동독의 자유와 발전은 새로운 정책의 전제가 아닌, 거기서 기대되는 결과임을 강조한 맥락과 같다.  김대중 정부는 미래의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남북한 관계를 변화시켜 서로 오고가고 평화롭게 협력해 통일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의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다시 말해 결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에곤 바르는 19638월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40여킬로 떨어진 아름다운 호수마을 투칭(Tutzing) 연설에서 군사적으로 현상을 유지하면서, 정치적으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은 김대중 정부의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대북 정책의 원칙과 유사하다. 김대중의 포옹정책은 남북 간의 접촉의 시대를 열었다. 접촉은 오해를 이해로 바꾸고,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으로 나아가게 한다. Alvin Toffler가 지적했듯이 근본적인 과제는 남과 북의 시간의 충돌이다. 가장 빠른 시간을 살고 있는 남한과 가장 느린 시간을 살고 있는 시간적 모순은 통일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근본문제다. 시간의 차이로 생긴 오해와 이질성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만남과 접촉뿐이다. pp.207-208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2018.7.30

by 우듬지 | 2018/09/20 02:44 | 雜文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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