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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이너서클의 썩은 돈과 곽노현의 착한 돈

MB이너서클의 썩은 돈과 곽노현의 착한 돈

  출처: 미디어오늘 2012.05.18 주요한(언론인)

유쾌, 발랄,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매일 아침 하늘에서 돈벼락이 내린다. 아름다운 황금색 5만 원 권과 싱싱한 배춧잎 색깔의 1만 원 권 지폐가 하늘에서 비처럼 펑펑 쏟아진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돈 다발이 수북이 쌓인다. 누구든지 그걸 필요한 만큼 주워다 쓰면 된다. 단, 욕심을 내서 집에 쌓아두면 곧 악취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다. 그 날 그 날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써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돈 때문에 싸우고, 죽고, 사기치고, 걱정하는 일이 사라질까? 천만에 말씀! 돈만 보면 환장을 하는 ‘돈 벌레’들, 선천성 ‘돈 밝힘증 변태’들, 돈에 걸신들린 ‘흡전귀(吸錢鬼)’들…. 이런 역겨운 DNA를 지닌 종족들이 이 땅에 엄존하고 있는 한, 온 천지에 매일 돈 소나기가 내린다 해도 이집 저집 돈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할 게 분명하다. 이 미련한 족속들은 먼 옛날 모세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부터 그랬다. 하늘에서 조석으로 일용할 ‘만나’를 내려도, 그걸 굳이 자기 집에 쌓아 두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니까. 이래저래 이 세상엔 구더기가 꾀고 고약한 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

아쉽게도 돈 벼락, 돈 소나기는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돈더미 속에 몸을 파묻고 산다. 물불 안 가리고, 밤낮 안 가리고, 불법·편법 안 따지고,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검은 돈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싸구려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검은 돈 이야기들이 연일 톱뉴스를 장식한다. 저축은행 회장들이 고객 돈 수천억 원씩을 불법대출‧횡령 하는가 하면, 사립고교 교장 집에서 17억 원의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오고, 대통령의 형님 댁 장롱에선 7억 원의 수상한 돈다발이 발견된다.

천박한 ‘돈 벌레 공화국’이다. 권력과 돈이 뒤엉킨 ‘추악한 댄스판’이다. 대통령 절대 권력을 정점으로 지연, 혈연, 학연, 거기에 종교의 연까지 가세한 ‘그들만의 잔치판’이다. 요즘 엽기적 금융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이 속한 소금회(소망교회 금융인 모임), MB정권 창출의 컨트롤 타워였던 6인회, 영포(영덕, 포항)라인,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라인, 강부자(강남부자)라인, SKY(서울시, 고려대, 영남)라인….

이들이 누군가? 지난 4년 여 동안 한 국가의 권력과 부를 농단(壟斷)한 ‘MB 이너서클’들이다. 권력을 접수한 순간부터 이 나라를 자신들의 치부(致富)를 위한 수익모델로 삼기 시작한 돈 벌레들이다. 멀쩡한 4대강을 파헤치는 데 22조원을 쏟아 부은 다음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 등이 공사를 나눠 먹었고,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 터널 등 초대형 이권사업을 민간자본에 넘긴 배경에는 MB의 조카이자 이상득의 아들인 이지형씨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권말기로 접어든 지금도 인천공항과 KTX, 다른 공기업 등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 물건은 뭐든지 마구잡이로 팔아 치우려 하고 있다. 나라를 통째로 먹어치우려는 기세다. 아, 역겨운 돈 벌레들. 퉤퉤퉤!

권력은 돈을 부르고, 돈은 부패를 잉태하고, 부패는 재앙을 낳는다. 요즘 MB이너서클의 멤버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이유다. 형님 측근 먼저, 아우 측근 먼저….

한 때 MB도 적(籍)을 두고 있던 소금회의 멤버였던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요 며칠 새 연이어 구속됐다. 김찬경은 5000억 규모의 불법대출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나 구린 돈 이었으면 56억 원이나 도둑을 맞고도 3500만원을 도난당했다고 줄여서 신고했을까. 임석은 고객돈 170억 원을 빼돌리고 1500억 원을 불법 대출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이상득의 핵심측근이던 박배수 보좌관은 SLS등 여러 업체로부터 10억여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돼 수감됐다. 역시 이상득의 보좌관 출신으로 ’왕차관‘소리를 듣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시행사인 파이시티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일 구속 수감됐다. 검찰 계좌추적을 통해 박영준의 형 계좌로 20억 원의 수상한 뭉칫돈이 입금된 사실도 확인됐다고 한다. 연간 매출 1억 원 규모의 사업을 하는 박영준 형의 계좌에서 나올 법한 규모의 돈이 아니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어디 그뿐인가. 'MB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MB의 남자들도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다. 탐욕의 종착역은 늘 ‘큰 집’이다. 국민들은 그 지저분한 검은 돈의 흐름 한 가운데 앉아 있는 MB 형제를 주시하고 있다. 과연 ‘돈벌레 공화국’의 ‘MB 이너서클 잔혹사’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그렇다고 세상에 돈 벌레들만 우글거리는 건 아니다. 착한 기부천사들도 널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이사회 의장은 이제까지 무려 280억 달러(약 32조원) 이상을 사회에 내놓았고,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사망할 때까지 310억 달러(약 35조원)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환 투기꾼으로 욕을 먹는 조지 소로스조차 72억 달러(약 8조 2000억 원)를 내놓았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은 지진 피해 지역 이재민을 돕는 데 100억엔(약 1310억 원)을 쾌척했다. 은퇴할 때까지 소프트뱅크 사장 자격으로 받는 연봉 1억8000만 엔도 전액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에선 얼마 전 안철수 교수가 15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달이 몇 천원, 몇 만원씩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이름 모를 장삼이사들도 부지기수다.

돈은 두 얼굴을 한 야누스다.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악마로도 변하고, 착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천사로도 변한다. 그래서 때론 양쪽 사이에서 엄청난 오해를 사기도 한다.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그런 무시무시한 오해를 사고 있는 경우다. 선의의 부조금 2억 원이 교육감 선거 상대 후보를 매수한 검은 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선거 빚에 쪼들려 위기에 빠진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를 살리고자 건넨 돈이었다. 이로 인해 곽노현은 1심에서 벌금 3000만원, 2심에서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창 기세를 올리던 서울교육 혁신까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돈 때문에 빚어지는 'MB 돈벌레 공화국‘ 잔혹사의 또 다른 일면이다.

오해를 받을 만도 하다. 곽노현에게 던져지는 여러 가지 의혹 중 가장 빈번하게 던져지는 질문;

“2억이나 되는 거액을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줄 수 있어?”

사회통념으로만 판단하면 그 대답은 “노”다. 그러나 곽노현의 지난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후 다시 똑같은 질문을 접하면, 그 대답은 금방 “예스”로 바뀐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곽노현의 선행을 증언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곽노현이 과거에도 몇 차례 억대의 부조를 했고, 지금도 매년 3000만 원 안팎(소득의 15% 정도)을 기부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이다.

충북 청산에서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베드로와 루시아 부부가 판사에게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곽노현은 1997년 무렵 은퇴하는 신부님과 그 신자들을 위해 충북 청산에 7000여만 원의 돈을 들여 피정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지금 돈으로는 억대를 훌쩍 넘기는 가치의 돈이다. 신부님께서는 사정상 청산으로 오지 않으셨지만, 그 집은 지금도 베드로와 루시아 부부의 손에 맡겨져 어려운 이웃과 영혼의 휴식을 위한 피정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곽노현은 또 1990년대 초반 친구의 선교활동을 돕기 위해 1억 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선뜻 구해주기도 하였다. 그것도 자신의 수중에 지니고 있던 돈을 내 준 것이 아니었다. 착한 일을 하는 친구를 돕자며 아내에게 부탁을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친정에서 돈을 구해와 마련한 돈이었다고 한다. 곽노현의 이런 선행은 1심과 2심 재판을 통해 모두 인정된 사실들이다.

 정의로운 시민이라면 마땅히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곽노현의 2억이 정말로 순수한 부조였다면?”

  용기있는 판관이라면 마땅히 이런 판결을 내려야 한다.

“열 명의 진범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 곽노현은 무죄다.”

만물은 햇빛을 받지 않으면 썩는다. 돈 벌레들이 장롱속이나 금고, 뱃속 깊숙이 쟁여놓은 돈다발이 부글부글 썩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다. MB 집권이후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검은 돈의 음모들을 백일하에 드러내야한다. 탐욕스런 돈 벌레들은 마땅히 박멸돼야 한다. 그러나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MB이너서클의 검은 돈과 곽노현의 착한 돈은 반드시 분별돼야 한다. 잡석 속에서 옥을 골라내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by 우듬지 | 2012/05/19 02:26 | 기본테마 | 트랙백

겐지 이야기(일본어:源氏物語(げんじものがたり

겐지 이야기(일본어:源氏物語(げんじものがたり)겐지모노가타리[*])는 일본헤이안 시대 중기(11세기)에 지어진 소설이다. 작가는 통상 무라사키 시키부라고 여겨지지만, 복수작가설, 후대창작설도 있다. 54첩에 달하는 장편으로 800여 수의 와카(和歌)가 들어있다. 일본 문학의 여명기를 장식한 최고 걸작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덴노의 황자로 태어나 신하 계급으로 떨어진 히카루 겐지(光源氏)와 그의 아들 세대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은 500명에 가깝고 4대의 임금 70여 년에 걸친 장편이다. 작자는 궁정 귀족사회의 진상을 포착하고, 인간의 운명을 깊고 예리하게 응시하고 있다. 성격묘사라든지 자연묘사에서 세세한 부분에까지 빛을 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1]

목차

[편집]등장 인물

• 히카루 겐지

제1부·제2부의 주인공. 기리쓰보 천황과 기리쓰보노 고이 사이의 아들로 천황의 제2황태자. 신적 강하하여 겐지 성을 받는다. 아내는 아오이노 우에, 온나산노미야이며 사실상의 정실부인은 무라사키노우에이다. 아들로는 유기리(어머니는 아오이노우에),레제인(어머니는 후지쓰보 중궁, 공식상은 기리쓰보 천황의 아이), 아카시 중궁(긴조 천황의 중궁.어머니는 아카시노기미). 그외 양녀로는 아키코노무 중궁(레제 천황의 후궁이자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의 딸) 법적인 아들인 가오루(가시와기와 온나산노미야의 아이)이 있다.

• 기리쓰보 천황

히카루 겐지의 아버지. 기리쓰보 천황의 막내아이라고 알려진 레제인은 사실 겐지의 아들이다.

• 기리쓰보노 고이

기리쓰보 천황의 후궁.겐지가 3세 때 요절 한다.

• 후지쓰보 중궁

선황의 공주. 기리쓰보노 고이를 빼어 닮은 외모 때문에 후궁이 되고 겐지와 밀통해 레제인을 낳는다.

• 아오이노 우에

태정관의 딸로 겐지의 첫 번째 정실부인로 겐지보다 연상이다. 오랫동안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않았지만 회임하여 유기리를 낳는다.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와에게 원한을 사 생령에게 빙의되어 죽는다.

• 도노추조 (내대신)

태정관의 아들이며 아오이노우에의 동복형제. 겐지의 친구이자 라이벌로 연애·승진등에서 항상 겐지에 앞선다.

•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

前동궁(기리쓰보 천황의 형)의 미야스도코로(후궁)이자 겐지의 애인. 겐지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고 그의 냉담함을 원망하여 아오이노 우에를 죽이기에 이른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은 후에 겐지의 양녀가 되어 레제인의 후궁에 들어가, 아키요시 중궁이 된다. 겐지는 미야스도코로의 사후, 그 저택을 물려받아 장대하게 개축한다. (로쿠조인의 명칭은 여기에서 나왔다.).

• 무라사키노 우에

후지쓰보 중궁의 조카딸. 소녀 시절부터 겐지에게 양육되었고 아오이노우에가 죽은 후 사실상의 정실이 된다. 겐지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어 아카시 중궁을 양녀로 한다. 온나산노미야와 겐지의 결혼으로 인생무상을 느낀게 된다.

• 아카시노기미

겐지의 애인이며 아카시 중궁을 낳는다. 본의 아니게 딸을 무라사키노우에의 양녀로 보내지만, 입궁후 다시 만나 그녀의 후견인이 된다.

• 스에쓰무하나

히타치노미야의 딸. 겐지의 애인이 되지만, 심하게 야윈데다가 길고 붉은 코를 가진 추녀. 작품 중 가장 보기 흉하게 그려져 있다.

 

• 온나산노미야

겐지의 이복형 스쟈쿠인의 제3 황녀로 겐지에게 조카딸이다. 스쟈쿠인의 바램도 있어 겐지 만년의 두 번째 정실이 된다. 유약한 성격으로 가시와기와 정을 통하여 가오루를 낳는다.

• 가시와기

내대신의 장남. 겐지와 결혼한 온나산노미야와 밀통한다. 이후 사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다가 그 걱정으로 인하여 병사한다.

• 유기리

겐지의 장남.어머니는 아오이노우에. 2살 연상의 사촌인 내대신의 딸인 구모이노 카리를 아내로 맞는다. 가시와기의 미망인인 오치바노미야를 사랑하게 되어 억지로 제2부인으로 맞는다.

 

• 가오루

제3부의 주인공. 겐지(친부는 가시와기)와 온나산노미야의 아이. 선천적으로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 가오루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지에 사는 하치노미야의 장녀 오이기미를 사랑했고, 그녀의 죽음 후에는 우키후네를 사모하게 된다.

• 니오노미야

긴조 천황과 아카시 중궁의 아들. 제3 황태자라는 신분을 내세워 방탕하게 생활한다. 가오루에 대한 경쟁심으로 향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니오노미야라고 불린다. 우지에 사는 하치노미야의 딸 나카노기미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로 삼지만 아내의 이복여동생인 우키후네에게도 관심을 나타보여 가오루의 집착을 알면서도 빼앗는다.

• 우키후네

오이기미와 나카노기미의 이복여동생. 가오루와 니오노미야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요코와의 승려에게 구조받는다.
*****

일본이 전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작품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난 두말없이 “겐지 이야기(겐지모노가타리)”를 선택한다.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밀착되어 있는 하이쿠가 보여준 단시의 미학도 좋고 다자이 오사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도 훌륭하다. 바쇼의 국민적인 인기를 무시할 수 없으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역시 빠지면 섭섭하게만 느껴진다. 특히 만화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고 있는 “테즈카 오사무”의 존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역시 “겐지 이야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고유한 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문학적 초월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특유의 모노가타리 문학의 정점에서 모노가타리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일본의 근대 문학에서부터 현대 문학을 넘어 미래의 일본 문학을 예측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겐지 이야기가 선점한 자리는 결코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서 찾아봐도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서정성이 가득 담긴 시구의 유려함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겐지이야기의 큰 축은 “히카루 겐지의 복잡한 여성 관계”로 정리 된다. 물론 다양한 수많은 인물들과 시대적 관습, 문화가 함께 엮이면서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품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흐름은 겐지의 복잡한 여자 관계와 후손들로 이어지는 또 다른 애정 관계로 간단히 설명 된다. 흔히 이야기의 줄거리상으로는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힘든 내용이다. 하지만 겐지이야기의 가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어떻게 연출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드러난다.

 

서정성 짙은 문장이 자아내는 감성은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고이 간직해서 평생 감상하고 싶은 미술 작품처럼 겐지이야기의 문체는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일본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유려한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다. 표현 능력에 있어 현재까지도 탄성을 절로 지르게 만드는 서정성은 작품 전편에 걸쳐 화려하게 수놓으며 깊고 잔잔하게 독자들의 가슴 속에 스며든다. 감수성 넘치는 문장들은 인물들의 내면의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며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게 하였다.

 

전편에 걸쳐 수록되어 있는 795수의 와카는 겐지이야기의 서정성과 유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와카 한 수 한 수마다 시적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겐지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함께 하며 감성의 조각들이 자아내는 반짝임을 곳곳에서 펼쳐내었다. 일본인의 정서와 문화, 풍속, 신앙에 이르기까지 겐지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시구들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독자들의 마음 속을 적셔가며 어느 새 무한한 감동의 여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문학이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감동’이라는 요소에 충실하기 위해서 겐지이야기는 감성의 반짝임을 극대화시켜내었던 것이다.

 

겐지이야기는 재미있다. 문학적 완성도나 문장의 미(美)가 아니라 히카루 겐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작품의 이야기 구성이 방대한 스케일 속에서도 상당히 훌륭하게 짜여져 있으며 개별적인 에피소드마다 흐름의 굴곡을 절묘하게 맞추어 나가며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이 작품이 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겐지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자들에 의한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연극으로,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등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겐지이야기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웬지 모를 두근거림을 주고 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고 뻔해!라고 외치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지금 와서 생각한다면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매번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존재하는 모노가타리문학과 일기문학 우타모노가타리 문학의 묘미를 극대화시켜 집대성 한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질문에 누구나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11세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시적인 아름다움을 끌어올린 훌륭한 작품이 현재까지도 없기 때문이다.

 

한 평론서에서는 이 작품은 “부처님이 계시를 주셔서 세상에 내린 작품”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정말 이 작품은 신이 만든 작품이 아니였을까? 이 작품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무라사키 시키부’는 아시다시피 궁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궁녀가 아니라 정말로 관세음보살이였던 것일 까? 단순히 여류작가의 뛰어난 감성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겐지이야기는 문학성과 역사성, 그리고 시대의 모습을 담은 영원성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작가 특유의 감성과 일본의 고전문학의 유려함이 담겨 있는 일본문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by 우듬지 | 2012/05/19 02:20 | 백과사전 | 트랙백

5.18 광주

다시 5월이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5월은 온다. 그러나 5월이 주는 의미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특히 광주의 5월은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오늘날 광주의 5월은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 동안 타올랐던 항쟁 이후, 타고남은 그 흔적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올해로 32년, 광주에서 시작된 우리의 5월은 황량하고 척박했던 대지에서 이제 무성한 거목으로 자라났다. 그 세월의 흐름을 잠간 되돌아 보려한다.

이 10일 동안 광주에서 일어났던 극적인 일은 신군부 권력의 항쟁세력에 대한 잔혹한 탄압, 그리고 은폐와 왜곡에 의해 외부에 공적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1987년 6월 항쟁과 1988년 국회의 청문회가 생중계로 전국에 방영되면서 일반에게 폭로됐다. 뒤늦게 알려진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한 충격과 파장은 크고 깊었다. 예를 들면, 1998년 학술토론회에서 어떤 교수의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광주항쟁은 ‘당신은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했소?’라는 질문을 우리 중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어느 교수는 ‘우리 모두는 광주시민에게 죄인’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이 말들은 나에게 진실이 담긴 진한 고백으로 들렸다.

그러나 더 준엄한 사실은 광주항쟁의 진실에 햇빛을 비춘 국회의 청문회가 가능했던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온갖 수난과 희생을 무릅쓰고 감행해왔던 싸움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부터 거의 해마다 거듭된 청년·학생들의 자결투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2000년 무렵에 이르러 이 싸움은 일단락됐다. 5월 투쟁으로 상징화된 이 긴 싸움을 우리는 5월 운동이라 말한다.

1980년대 초기의 5월 운동은 매우 제한된 추모제로 치러졌다. 광주항쟁에서 무참하게 학살된 시신들이 쓰레기 청소차에 실려가 집단적으로 매장된 망월동 묘역은 그 당시에 금단의 구역이었다. 공안기관원이 출입을 통제했고 각자가 방안 제사로 지내도록 유도했으나, 감시의 눈을 피해 산길로 돌아들어간 소수의 피해자 가족과 시민·학생들이 모여 한과 눈물에 젖은 의례를 가졌던 것이다. 그 때 소박한 일부 유족들은 자기들이 큰 죄인인줄 알고 드러내놓고 말도 못했다고 증언한다. 

1984년 5월에는 지난 해 있었던 학원 자율화와 구속자 석방 조치의 후속효과로 망월동 묘역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완화됐다. 그 효과로 3천명 이상의 시민·학생들이 모여 열기가 오른 추모행사가 이뤄졌다. 서울에서 민주화청년연합을 건설한 김근태 선생, 백기완 선생 등 40여 인사도 처음으로 망월동을 찾아와 목 놓아 통곡했다. 그 후 정의와 진실의 삶에 지친 영혼을 달래려고 전국에서 조용히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곳은 하나의 성소가 돼 갔다.

1988년 망월동 묘역의 추모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폭도의 난동으로 매도됐던 광주항쟁이 신군부 2기 정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새롭게 규정됨과 아울러 정부가 공식적으로 광주시민에게 사과함으로써, 5월의 의미와 그를 상징하는 행사가 달라졌다. 망월동 묘역에는 1만 명이 넘는 대군중이 협소한 산기슭에 운집해 거대한 열기를 뿜어냈다. 전날 밤 수 만 명의 시민이 도청 광장을 가득채운 전야제는 갖가지 공연과 재현극 및 행진으로 축제의 성격을 보여줬다. 18일 오전 망월동 추모제가 끝난 후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 일원에서는 10만여 명의 인파가 거리를 메운 가운데 ‘5·18광주민중항 쟁기념식’과 ‘5월 학살 원흉처단과 진상규명을 위한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이와 같이 고조된 5월 행사는 ‘혁명축제’로 명명됐고 이는 1991년경까지 계속됐다. 이를 통해 강화되고 재생산된 동력으로 5월 운동의 일상투쟁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 투쟁은 학살책임자 체포결사대 운동, 고소·고발운동으로 구체화됐고, 마침내 ‘5·18특별법’ 제정의 결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법에 근거해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반면에 폭도로 됐던 시민들은 ‘민주화 유공자’로 명예가 회복됐으며, 항쟁의 그날은 국가기념일로, 망월동 묘역은 국립묘지로 재탄생됐다(1997년). 말하자면, 5월 운동은 1980년 5월의 패배를 승리한 항쟁으로 재생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5월 행사는 일상투쟁의 동력을 재생산해내는 효소가 됐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1988년 이후, 5월 행사는 5월 한달 동안 전야제, 추모제, 국민대회 등의 기본행사 이외에도 50여 개의 개별행사들이 집중적으로 재현돼 왔다. 점차 문화예술적 공연과 재현이 중심이 되지만, 종교, 나눔, 어린이·청소년, 학술대회와 행진 등의 매우 다양한 행사가 광주만이 아니라 국내외 주요 단체와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참여해 계속해오고 있다. 올해 32주년 행사위원회의 책임을 맡고 보니 다시 그 날의 흔적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간채 전남대·사회학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전남대 5·18연구소장과 (사)광주연구소 이사장, 5·18민중항쟁 32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5·18 그리고 역사』(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출처:교수신문 2012.05.18

by 우듬지 | 2012/05/19 02:03 | 기본테마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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