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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단재 신채호

* 단재의 근대 민족주의 사관- 신용하
1. 국사에서의 尊華史觀과 사대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김부식)
2. 왕조사 중심의 중세사학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왕실의 흥망이나 정통을 따지면서 綱目體와 編年體로 쓰인 중세사학을 王名과 연대와 인명과 지명이나 기술할 뿐이지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민족진화의 과정이나 민족국가 의 흥망성쇠의 인과를 밝히지도 못하는 낡고 가치없는 역사라고 비판하였다.
3. 한국 역사에 대한 일본 역사서들의 한국사 왜곡을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4. 한국인이 지은 당시의 역사교과서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사대주의적 존화사관과 ‘임나일본부설’도 비판하지 못한 惡敎科書들이라고 통탄하였다.

* 단재의 낭가사상의 형성과 정립- 배용일
“낭가사상은 단군조선의 수두제전(蘇塗祭,단군제 ) → 부족국가의 열국의 민족제전(영고․ 동맹․ 무천․ 소도 등)→ 고구려의 선배제도 → 신라의 화랑제도로 성장․ 발전해 왔다”
1. 조선 역사상 일천 년 이래의 제일 큰 사건으로 묘청의 서경전역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국의 역사를 사상사적 시각에서 전통적인 낭가사상과 외래 사상인 유가사상과의 대립투쟁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상의 대립은 서경전역으로 종결이 났으며, 국풍파가 사대유학파에 의해 몰락하게 되면서 민족과 국가가 쇠하게 되었다는 시각이다. 단재는 사대적 중세 유교사관(김부식의 “삼국사기”)과 강권주의적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 논거로서 낭가가상을 인식하였다.
2. 한국 고대사의 대외항쟁 승리와 삼국통일은 낭가사상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낭가사상의 최고 발현자로서 연개소문, 을지문덕 등을 발굴하였다. 국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낭가사상과 이 낭가사상의 주체자로서의 고대의 무사적 영웅을 내세움으로써 낭가사상에 입각한 민족적 영웅사관을 수립할 수 있었다.
3. 단재의 낭가사상이 구체화된 것이 고대사 인식이고 고대사 서술이다. 즉, 단재의 구체적인 역사사상과 역사서술의 이론적 근거와 이념이 낭가사상이다.

* 단재의 고구려 고토 만주에 대한 인식- 박영석
“ 단재는 … 만주를 포함한 한국 고대사를 종래의 사가들처럼 단군, 기자, 삼한, 신라로 체계화하지 않고 단군―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단재의 만주에 대한 주권의식과 영토 회복 의식이 작용한 것 같으며 ,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등이 만주에서 배출되었다고 열거한 것을 보면 그의 자강의식과 영웅사관도 함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 만 관계사를 역사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단재는 만주가 한국과 공동운명체였음을 인식하여, 장차 만주가 구제 정치상 어떻게 처리 되며, 만주가 어는 나라의 세력권 내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만주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 등 열강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장차 한국 운명을 전망하려고 하였다.”

* “天鼓” 창간사
1. 일제의 국권탈취와 만행을 밝혔다.
2. 신라 시대 이래로 수천 년을 “왜와의 혈전사” 라고 선언했다.
3. 일본의 조선사 왜곡을 밝히려고 했다.
4. 3․ 1 운동이후 국내언론 상황과 일제에 부역한 언론을 비판하였다.
5. 단재의 혼령을 쏟아내는 격문
“ 천고여, 천고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더러움과 비린내를 씻어다오. 혼이 되고 귀신이되어 적의 운명이 다하도록 저주해다오. 천고여, 칼이 되고 총이 되어 왜적의 기운을 쓸어버려다오 . 폭탄이 되고 비수가 되어 적을 동요시키고 뒤흔들어다오. 국내에선 민족의 기운이 고양돼 암살과 폭동의 장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밖으로는 세계 추세가 달라져 약소국가들의 자결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천고여, 천고여, 너를 북을 두드리라~ . 나는 춤을 추리라 . 우리 동포들의 사기를 끌어 올려보자꾸나. 우리 산하를 돌려다오, 천고여, 천고여, 분투하라, 노력하라, 너의 직분을 잊지 말지어다.”

*「조선혁명선언」의 내용
제1장- 일제는 한민족 생존의 적이다.
제2장- 강도정치에 타협․ 기생자는 우리의 적이다.
제3장- 외교론 ․ 실력양성론․ 준비론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직접혁명을 선언하노라.
제4장- 아나키즘적 민중혁명과 폭력의 철학을 제시한다.
「선언」은 「의열단선언문」답게 철저하게 의혈혁명론을 주창한다. 양병 십만이 폭탄투척 하나만 못하고 억천 장 신문잡지가 혁명적 폭동만 못하다는 주장한다.

*「조선혁명선언」이 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과 역할 - 신용하
1. 의열단을 비롯하여 독립운동단체들에게 이면과 신념을 부여하고, 그들의 독립운동을 크게 고취시켰다.
2. 「조선혁명선언」은 3․ 1운동 후에 대두한 자치론․ 내정독립론․ 참정권론 등 일제와의 타협주의를 분쇄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3. 일제의 강도적 식민지 통치는 혁명에 의해서만 축출될 수 있으며, 독립운동이 바로 민족혁명운동임을 가르쳐 주었다.
4. 당시의 한국민족주의와 민족주의 독립운동노선으로 하여금 ‘시민적 성격’을 탈피하여 ‘민중’을 발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소앙의 삼균주의)
5. 이 ‘선언’은 한국민족의 생존의 조건까지 철저히 박탈하는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투쟁이 정당함을 가르쳐 주어 그 후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방법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구의 무장투쟁)

* 역사는 ‘我’ 와 ‘非我’의 투쟁
단재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이 시간과 공간으로 확대되는 것이라고 보면서, 투쟁은 ‘심적 활동’이라고 파악하였다. 즉 역사는 정신과 의식의 투쟁사라고 본 것이다. 그가 제시한 아와 비아의 관계는, 국가와 민족의 대립, 지주․ 자본가 대 무산계급의 대립, 학문․ 기술․ 직업상에서의 아와 비아의 대립을 거론하고, 이러한 대립의 투쟁은 휴식 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단재의 사관은 뚜렷한 자아 주체론이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고 조선민족을 아의 단위로 삼아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의 소장성쇠를 서술한 것이다. 또한 사람을 소아와 대아로 나누고 , 소아는 유한하나 대아는 영원함을 강조한다. 소아는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것이며 거짓된 것으로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고, 대아는 정신적인 것이고 참되 것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였다.
망명지에서 고대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온 단재는 우리민족은 단군의 후예이고, 그 중심 종족은 부여족이라고 , ‘부여족정통론’을 전개한다.

‘我의 사관’을 정립한 단재의 업적을 압축한다면 다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의 상태를 가려서 기록한 것이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는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다.” (신채호, 「독사신론」, 『신채호 역사논설집』, 12쪽.)
* 이글은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지음, 시대의 창, 2005.)를 읽고 쓴 글.


by 마중물 | 2008/02/11 20:24 | 雜文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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